5년전에 왼손 엄지에 마비가 왔다. 운이 좋아 늦지 않게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될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다. 다행히 손은 다시 돌아왔다. 9개월이 걸렸다.
단지 손가락 하나일 뿐이었다. 집게손은 고사하니 무엇도 집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불가능해졌다. 군대에선 식사 때 나오는 우유를 혼자 열지도 못했다. 손전체가 무용해졌다. 손을 못쓰니 팔도 붙어만 있을 뿐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회복되지 않으면 장애 판정을 받을 거라고 했다. 단지 손가락 하나일 뿐이었다.
그때 배웠다. 손가락 한개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꼽아봐야 키오스크 터치할 때 정도? 두개도, 세개도, 네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돌아보면 이보다 인생의 진리가 있을 수 없다.
철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은 손을 들었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 다섯개의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들 사이의 수많은 관계라고 했다. 엄지는 검지 없이 거의 쓸모가 없는 것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존재하고, 삶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
근주자적 근묵자흑. 2024년을 시작할 때 속마음에 품었던 성어다. 이제는 내가 나를 어느정도 아니 내 주위에 내가 뒹굴고 싶은 먹을 깔아야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본업에 충실한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한해의 마침표를 온전히 찍고 나니 내 주변은 이미 새로운 사람들로 들어차 있더라.
지금 내 주위의 인연들을 쭉 돌아봤다. 이만한 축복이 없다. 하지만 분에 차는 만큼에 비해 잘 누리진 못한 것 같다.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로열티가, 책임감이 부족했다. 반성하는 부분. 주어진 축복이 축복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내 선택이고 역량임을 배웠다.
사람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먹고 사는 생물이니까. 삼십 나이 먹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또릭센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 참된 인간다움은 손에서 태어난다고 말했다. 개나 돌고래, 독수리 등 많은 동물들에 비해 인간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명확한 지침없이 제공되는 사지다. 진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봐, 너에게는 손이 두 개 있어. 이 손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너에게 달려있어.” 인간은 사지 덕분에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권리와 의무가 가득찬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관계가 있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인간은 온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용서와 겸손, 감사의 능력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더 잘 타협하고, 양보하고 책임져야겠다. 내게 주어진 두 손과 열 손가락에 겸손하고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