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책임을 입에 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책임에 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임의 본질적인 속성 하나는 전적으로 결과에 의존한다는 점에 있다. 그 누구도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질 수 없다. 책임을 진다 한들 어떤 일이 성공을 담보할리는 만무하고, 실패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리거나 하여 결과를 만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에 한해서만 그에 상응하는 다른 무언가로 대신 메울 뿐이다. 국가 통치든 기업경영이든 팀플이든 무엇을 보더라도 똑같다. 실패 후 남는 잔재는 언제나 손해와 피해뿐이다.
책임을 입에 담는 것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적 블러핑에 가깝다. 하지만 말은 아무런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언사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 그래서 나는 늘 차라리 과묵해지는 편을 택해왔다.
예전에 책임에 관한 이런 내 생각을 대표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좀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부여받게 되면서 내가 설득해야 할 반경이 늘어났고, 내가 이뤄내야 하는 책임이 묵중해지면서부터였다. 대표님은 내가 짊어진 것보다 더 큰 무게를 항상 짊어지고 계시니까…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책임을 진다’라는 말은 결국 ‘당신과의 관계를 놓지 않겠다‘라는 말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일의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지만 관계를 놓지만 않으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책임을 지겠다’라는 말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의지를 말하는 것인 듯해요.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개인은 한없이 미약하고 무능력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결과는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무수히 많을 테니까.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심판대에 올려지는 것은 ‘그럼에도 또 다시 시도할 것인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놓지 않을 것인지’라는 의지가 되는 것이 섭리일지 모르겠다. 가까운 관계, 상호 신뢰하는 관계, 미래를 약속한 관계는 이렇게나 복잡하고 엉망진창이다.